《콘크리트 아일랜드》

2024년 08월 19일
이웃 Lee JY님

 

조정환 작가의 《콘크리트 아일랜드》 전시가 열렸던 CHAPTERⅡ(챕터투)는 홍대입구역 근방에 위치합니다.

직접 겪어봤든 그렇지 않든, 한국인이라면 마포구를 생각하면 떠오르는 이미지 한 가지씩은 가지고 있을 것입니다. 제게 이곳은 이미 너무나 ‘도시’여서 이제는 도시로 존재하는 것조차 권태로워 보이는 곳입니다.

조정환 작가는 페인터(Painter)로서 살아가는 도시의 삶에 대해 이야기합니다. 페인터는 대체로 다른 직업보다는 혼자인, 타인과 거리를 두고 살아가는 직업일 것입니다. 그가 바라보는 도시는 어땠을까요? 일단 전시장에 들어서면 적황색과 검은색으로 가득 찬 작품들이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옵니다. 작가는 마치 지옥 불 안에서 바라보는 풍경처럼 도시를 묘사하고 있습니다.

A Songwriter, 2024, oil on canvas, 90.9x72.7cm

첫 번째 작품인 A Songwriter입니다. 상체는 해골, 하체는 뚝 끊겨버린 전선을 닮았습니다. 살아있는 생명으로도 보이지 않는 이 주인공이 하고 있는 일은 창작입니다. 제목에서 알 수 있듯 그는 작곡가니까요. 저 너머로 보이는 묘비와 같은 것들은 모두 도시에 세워진 빌딩입니다. 바로 앞에서 활활 타오르는 불길을 보니 아무래도 이 세상은 폭삭 망해버린 것 같습니다. 대한민국의 도시에 살며, 이렇게 하늘이 온통 용암 빛으로 뒤덮힌 것 같은 멸망을 우리는 언제 경험해 봤을까요?

그렇습니다. 조정환 작가의 《콘크리트 아일랜드》는 팬데믹 시대를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At the End of the Day, 2024, oil on canvas

건물보다도 커다란 존재가 나타나 한입에 꿀떡 삼켜버립니다. 제 눈에는 그 입에 들어간 것이 조금 전 기타를 튕기고 있던 작곡가와 그가 피워낸 불꽃으로 보입니다. 조정환 작가는 팬데믹 시대에 방에 꼼짝없이 갇혀 지내며, 내 것인 줄 알았던 자유를 박탈당하고 내 공간인 줄 알았던 도시를 빼앗긴 후 계층 구조를 명확하게 인식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우리는 아주 많은 공간을 타인과 공유하며 살아가지만, 공유되던 광장과 건물이 폐쇄되고 각자가 온전히 소유한 구역만을 눈으로 보게 되었을 때. 우리에게 남는 것은 예상보다도 훨씬 작을지도 모릅니다.

Juicy Concrete, 2024, oil on canvas, 60.6x50cm

죽음, 격리, 절망과 혼돈, 자유가 박탈당하는 그 모든 시간 속에서도 조정환 작가의 그림에서는 자꾸만 무언가 태어납니다.

전시장에 놓인 리플렛을 들어 글을 읽어 보았습니다. 작가는 선택지 없는 환경, 한정적인 자유를 표현하기 위해 적은 종류의 색깔만을 사용하고 있다고 말합니다. 글에는 부자유와 차등 지급되는 재화에 대한 이야기가 있었지만 제 눈에 들어온 것은 좀 달랐습니다. 형태를 잃고 액화된 콘크리트, 선득하게 빛나는 불꽃과 분노. 열기와 노래는 문을 닫고 걸쇠를 잠근들 쉬이 갇히지 않는 존재들입니다.

A Ritual, 2024, oil on canvas, 145.5x112.1*

너무 어둡고 무거워서 거의 암벽처럼 보이는 바다 앞에선 작은 모닥불이 탑니다. 두 존재를 데우기에 충분할까요? 일단 그들은 그 불에 무언가를 구워 배를 채우고 있기는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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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ncrete Island, 2024, oil on canvas, 72.7×116.8cm
A Rulebreaker, 2024, oil on canvas, 116.8x91cm
A Ritual, 2024, oil on canvas, 116.8x91cm

각자의 구역 안에서 타오르던 불이 한데 모입니다. 하늘을 메울 채울 정도로 커다란 연기를 만들어 냅니다.

리플렛에서는 여전히 도시의 삶은 부여받은 환경이고, 우리에게 선택지는 없다고 이야기합니다. 조정환 작가의 모닥불은 발산보다는 수축을 자아내고 있다고.

그러나 제게 이 불은 발산하는 불이었습니다. 눈이 시리도록 추운 겨울날에는 버스정류장 의자에 남겨진 옅은 온기마저 홧홧하게 느껴지곤 합니다. 그림 속 도시는 너무나 차가워서 그 안에 있는 기계 같은, 전선 같은, 시체 같은 존재들마저 뜨겁게 느껴집니다. 그리고 그 존재들은 실제로 온기와 소리를 발하는 성질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들의 온기로 도시는 데워질 것입니다. 어쩌면 차가운 것은 도시가 아니라 건물일 뿐인지도 모릅니다.

To Ground Level, 2024, oil on canvas, 53x65.1

작가는 팬데믹을 맞이한 도시에서의 외롭고 고된 삶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작품 속 주인공들은 각자의 공간에 격리된 채 불꽃에 의지하여 얕은 숨을 이어가고 있지요.

그러나 우리는 열기에 녹아내리는 콘크리트, 폐허 속에서도 여전히 남아있는 악기와 음악을 발견할 수 있었습니다. 군중이 한데 모여 거대한 불길을 만들어내는 장면은 어쩌면 환상일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콘크리트 아일랜드》에서 나에게 남은 불씨 하나쯤 발견할 수 있었다면, 그것으로 된 것 아닐까요?

마지막 작품인 To Ground Level 에서는 바다로 사방이 막힌 섬도, 묘비처럼 우뚝 솟아 서로를 아득히 멀어지게 만드는 건물의 옥상도 아닌 ‘바닥’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도시에서 태어나고 죽는 ‘도시 원주민’들은 종종 땅이 있다는 사실을 잊는 것만 같습니다. 건물에서 내려와 땅에 발을 딛어야 보이는 이 장면. 너무 차갑거나 뜨거운 다른 그림과는 달리 미온한 온도를 가진 이 작품 앞에서 저는 오래 멈춰 있게 되었습니다.

 

 

조정환 작가의 《콘크리트 아일랜드》 전시가 열렸던 CHAPTERⅡ(챕터투)는, 차가운 건물과 뜨거운 인물들이 한데 엉겨있는, 홍대입구역 근방에 위치합니다.

[이미지]

Lee J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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