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놀이터를 사랑했던 당신에게”

플로렌스 유키 리 〈〈Let it sprout beneath my skin〉〉 전시 에세이

2023년 2월 18일
옆집미술 이웃 현경 님

안녕하세요. 이번에 새롭게 옆집미술의 이웃으로 활동하게 된 현경입니다.

저는 예술이 사람들에게 미치는 영향에 대해서 많은 흥미를 느끼고 예술을 인문학적인 관점에서 바라보고 사유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중간에서 예술을 쉽고 재미있게 전달하는 매개자가 되고 싶어요. 앞으로 잘 지켜봐 주세요! 

이번에는 제가 개인적으로 관심을 가지고 있던 주제인 ‘”어린시절”에 관한 전시가 열리고 있는 아트사이드 갤러리에 방문해 보았습니다. 이 날 경복궁역 근처에 위치한 아트사이드갤러리와 안국역에서 북촌으로 이어지는 길목에 위치해 있는 갤러리 5곳을 방문했는데요 서로 멀지 않은 거리에 위치하고 있어서 함께 관람하셔도 좋을 것 같아요.
글 중간중간에 함께 소개해 드릴 테니 참고해주세요.

〈Park Voyage〉 홍콩 국제공항 예술 문화 페스티벌

전시 작가인 플로렌스 유키 리 (Florence Yuk-ki Lee, b.1994)는 홍콩의 떠오르는 신예작가로 영국예술대학인 센트럴 세인트 마틴스에서 영상을 전공했고 2021년에 홍콩에서 크리에이티브 미디어 석사 학위를 취득했습니다. 애니메이션을 전문으로 하는 세계 최대 규모의 페스티벌인 프랑스 안시 국제 애니메이션 영화제(Festival international du film d’animation d’Annecy)에서 TV 및 커미션 영화 공식 선정을 받았습니다. 홍콩의 M+ 미술관에서 의뢰받아 제작한 미디어 작품 〈Park Voyage〉가 홍콩 국제공항 입국장에서 전시된 바 있으며, 해당 작품은 현재 M+ 미술관 파사드에서 2024년 말까지 만나볼 수 있습니다.

전시 전경 1

전시장에 들어서자마자 가장 먼저 눈에 띄는 것은 아이들이 타고 노는 미끄럼틀과 자동차였습니다. 보통 갤러리 하면 엄숙하고 진지한 분위기가 떠오르는데, 아기자기한 장난감들이 무거운 마음을 한층 가볍게 만들어주는 것 같았습니다.

〈you build a home in my mind〉, 2023

전시는 지하 1층으로 이어져요. 지하 1층에는 〈you build a home in my mind〉라는 4분 39초의 애니메이션 영상이 재생되고 있는데 이 영상의 배경음악이 1층까지 이어져 들립니다. 음악은 실로폰으로 치는 듯한 신비롭고 몽환적인 분위기이고 저는 아련한 느낌도 받아서 이번 전시의 주제와 잘 어우러지는 것 같다고 생각했어요. 아래 링크에 들어가시면 감상하실 수 있습니다.

 https://vimeo.com/florenceyukkilee/you-build-a-home-in-my-mind-preview

☆Tip 

제가 이날 방문한 갤러리 6곳 중 4곳에서 전시장 내에서 음악이 나오고 있었습니다. 

n   페레스프로젝트 서울 〈〈폭풍의 눈〉〉 
n    러브컨템포러리아트 〈〈PLASTIC LOVE〉〉 
n   국제갤러리 〈〈실패를 목적으로 한 정상적 질서〉〉 

음악이 전시를 감상하는 데 도움이 되는지, 전시와 조화를 이루는지 등등 눈으로만 전시를 보는 것이 아니라 청각을 함께 이용하면 더 풍부한 감상을 하실 수 있을 거예요.

전시 전경 2

1층 전시장 한쪽 면에는 원통형의 미끄럼틀과 설치물이 있고 그 안에는 형형색색의 탱탱볼들이 채워져 있습니다. 자세히 들여다보면 탱탱볼 사이사이에 작은 장난감들이 숨어 있어요. 영상이 재생되는 작은 기기도 들어있어요.

☆tip

탱탱볼 사이사이에 숨겨진 귀여운 장난감들을 찾아보세요. 마치 어릴 때 했던 보물찾기 놀이를 하듯이 말이에요!

지하 전시실로 내려가는 길

지하 1층으로 내려가는 계단에는 가로등이 하나가 켜져 있습니다. 지하 1층은 전시 환경이 어둡게 조성되어 있는데요, 계단을 내려가면서 뭐가 있을지 모르는 미지의 공간에 들어가는 기분이 들어서 가슴이 두근거렸어요.

★insight 어른이 되고 나서는 모험을 잘 하지 못하는 것 같아요. 낯선 곳으로 여행을 가거나 스마트폰을 보지 않고 처음 보는 가게에 들어가는 것 등등 저는 큰 용기를 내야지 할 수 있더라고요… 어릴 때는 친구들과 골목을 구석구석 탐험하면서 정체를 모르는 건물에도 들어가 보면서 놀았는데 말이죠. 여러분들은 평소에 모험을 즐기시나요? 그러지 않은 분들이라면 이 전시를 보러 가시면 색다른 경험이 되실 것 같아요.

〈Albireo〉, 2023

지하의 한 벽면 전체에서 재생되고 있는 애니메이션 맞은편에는 〈Albireo〉라는 설치 연작들이 배치되어 있습니다. 이 작품은 가로등처럼 생겼는데 그 안에는 마찬가지로 탱탱볼들과 장난감들이 들어있어요. 작품은 시시각각 다양한 색깔로 변하면서 신비롭고 몽환적인 느낌을 줍니다. 가로등은 작가의 주된 표현 매체인데요, 놀랍게도 이 작품은 성폭력 생존자와 예술가 간의 대화를 전제로 한 일종의 실험 작품이라고 합니다. 작가는 홍콩의 젠더&아트 스페이스인 480.0에서 주최하는 전시회에 참여하면서 〈Albireo I〉을 만들었고 나머지 연작들은 이번 전시를 준비하면서 만들었다고 합니다. 작가는 480.0에서 성폭력 피해자들을 만나 대화를 나누는 과정에서 그들의 대부분이 아주 어릴 때 가족에 의해서 강간을 당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고 그들의 아픔을 깊게 느껴 그 충격에서 벗어나는데 몇 주가 걸렸다고 하네요. 그럼에도 그들이 자신의 트라우마를 직면하고 과거를 공유하는 모습에서 용감함을 느꼈고 그들이 다른 피해자들과 서로를 격려하면서 희망을 가지고 앞으로 나아가는 모습에서 강한 힘을 느꼈다고 합니다.

★insight

“가로등은 어두운 길에서 방황하던 사람들에게 무한하고 대체 불가능한 따듯한 빛으로 다가가길 바라는 마음을 담았다.” (플로렌스 유키 리)

늦은 밤, 아무도 없는 으스스한 골목을 지나갈 때 가로등을 보고 불안한 마음을 안정시키며 빠르게 걸어갔던 기억이 나요. 

작가는 어둠 속에서 빛나는 빛으로 성폭력 피해자들에게 보호와 안전, 평온함을 제공하고 사랑과 응원의 메시지를 보내는 뜻을 담고 있어요. 

전시장에 깔려 있는 어둠은 우리가 처해있는 부정적인 상황, 마주하기 힘든 과거를 상징할 수 있어요. 어둠 속에서 가로등으로 보이는 작품은 신비로운 빛을 내뿜고 있으며 작품을 가까이 들여다보게 합니다. 그렇게 작품에 다가갔을 때 보이는 작고 귀여운 오브제들은 과거의 기억들을 떠올리게 합니다. 어둠 속에서 반짝이는 작품은 마치 우리에게 괜찮다고 말해주는 것 같아요. 전시장 전반에 존재하는 아기자기하고 귀여운 오브제들은 우리에게 과거를 마주할 용기를 북돋아 주면서도 위로와 치유의 효과를 전해주고 있습니다.

〈plastic heart〉, 2024
〈Albireo II〉, 2024

지하에는 이 밖에도 놀이용 자동차와 피아노, 뽑기 기계처럼 보이는 작품 〈plastic heart〉가 놓여 있어요. 1층에서부터 이어지는 이러한 연출 방식은 전시를 보는 동안 놀이터 혹은 놀이 공간에 온 것 같은 기분을 느끼게 합니다. 이렇게 특수한 분위기를 재현하는 전시를 “환기적 전시”라고 해요. 이 전시 방식은 시대, 국가, 문화적 환경 등을 연극적인 방식으로 재현하고 디오라마, 파노라마, 모형 등을 통해 관람객들이 자신의 경험과 연계 및 환기하여 전시를 이해할 수 있도록 합니다. 

- 디오라마: 그리스어의 'panhoran(모두가 보인다)'에서 비롯된 말로, 배경을 둥글게 하고 원근법을 이용하여 원경을 그리고, 전경에는 인물이나 기타 다른 입체적 모형을 놓고 조명하여 관람자가 마치 실경을 보듯이 현실감을 자아내는 그림 혹은 설치물을 뜻합니다. 

- 파노라마: 풍경화나 그림으로 된 배경에 축소된 모형을 설치해 특정한 장면을 만들거나 배치하는 것을 말합니다. 모형을 이용해 역사적 사건, 자연 풍경, 도시 경관 등을 표현하며, 음향이나 조명을 함께 연출하여 생생함을 더하기도 합니다. 디오라마 기법은 박물관이나 미술관, 과학관 등에서 많이 사용하고 있습니다.

〈Albireo I〉, 2023

전시 작품들은 모두 ‘Topophilia’라는 연구 주제와 관련이 있어요. ‘Topo-‘는 ‘장소’를 의미하며, ‘-Philia’는 ‘사랑’을 의미합니다. 따라서 Topophilia는 장소에 대한 강한 애착감을 뜻하는 그리스어로 볼 수 있어요. 작품을 보는 관람객들의 국적이나 살아온 배경이 다르더라도 놀이터와 관련된 유년 시절의 기억은 크게 다르지 않을 거예요. 나를 데리러 올 부모님을 기다리면서 놀고 있던 기억이나 그때의 불안했던 마음 같은 것들이요. 

★insight
작가는 자신의 작품으로 만들어진 장소를 통해 서로의 추억을 공유하고 공감대를 형성하여 관람객들이 서로 연결되기를 바란다고 전했습니다. 여러분들은 ‘놀이터’하면 어떤 기억이 떠오르시나요?

〈merry-go-round like a lullaby〉, 2023

플로렌스 유키 리의 드로잉을 보다 보면 마치 그 순간이 계속해서 반복되는 것 같은 느낌이 듭니다. 애니메이션 작품에서도 반복되는 장면들이 많이 등장하고 가끔 새로운 장면들이 등장하는데 이러한 흐름은 문득 생각나는 꿈, 기억 그리고 감정들을 뜻한다고 해요. 정말로 꿈, 기억, 감정들은 모두 갑자기 생겨났다 사라지는 것들이지요. 영원한 순간은 없고 모두 지나가게 되는데요, 긍정적이든 부정적인 순간이던 다시 돌아갈 수 없다는 사실은 언제나 씁쓸함을 안겨주는 것 같습니다. 작품은 표면적으로는 인생의 덧없음을 표현하고 있지만 작가는 “이 덧없음에 부정적인 감정은 없으며 반짝 빛나는 빛과 터지는 방울처럼 항상 사라짐이 있어야 새로운 것이 생성된다”고 전했습니다.

이번 전시에서 플로렌스 유키 리의 드로잉, 영상, 설치 등 다양한 작품을 만나볼 수 있습니다. 특히나 놀이터를 연상시키는 전시 연출 방식이 인상적인 전시입니다. 덕분에 자연스럽게 잊고 있었던 어린 시절이 떠올랐고 씁쓸함과 아련함 등 복합적인 감정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저는 전시를 보고 나서 치유를 받은 듯이 마음이 깨끗해진 기분이 들었어요. 다만 리플릿 등 전시와 작품에 대해 알 수 있는 안내서가 없다는 점은 아쉽게 느껴졌습니다. 

이 전시와 더불어 귀여운 것을 좋아하는 분들이라면 러브 컨템포러리 아트의 〈〈Plastic Love〉〉전시도 추천드립니다. 

마지막으로 이번 전시와 비슷한 주제인 “덧없음”에 관한 애니메이션을 추천하며 마칠게요. 제가 어릴 때부터 정말 좋아하던 애니메이션인 다이앤 잭슨의 “스노우맨(The Snowman)”입니다. 특히 크리스마스 시즌에 이 영화를 보면 더욱 행복한 기분이 드실 거예요. 읽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다음에 또 재밌는 내용으로 찾아올게요!


이미지 출처: 아트사이드 갤러리 제공, 플로렌스 유키 리 홈페이지

리뷰가 없습니다 아직입니다. 첫 번째 수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