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은 무엇을 그리워하는가?

안녕하세요, 옆집미술의 이웃 심선용입니다!

일민미술관에서 ≪포에버리즘(FOREVERISM): 우리를 세상의 끝으로(ENDLESS HORIZONS)≫ 전시를 보았습니다. 각자에게 소중한 무언가와 그리움에 대해 생각해 보는 시간을 가지길 바라며.. 글을 썼습니다.

재밌게 읽어주세요!

2024년 05월 16일
이웃 심선용님

우리는 무엇을 그리워하는가?

그리움에 대한 것들은 감정을 불러일으키며, 우리가 직접 경험하지 않았던 것들에 대해서도 착각 어린 향수를 느끼게 해준다. 이러한 노스탤지어는 현대에 이르러 문화, 사회 등 다양한 영역에서 활용될 만큼 중요한 요소로 떠오른다.

이동 수단과 미디어가 발달하면서 우리가 인식하는 공간은 무한정으로 확장되어 가고, 물리적 공간에서 느끼는 것들이 모호해졌다. 나아가 우리의 노스탤지어는 경험하지 않은 것들로 확장되기 시작했다. 우리는 다양한 미디어를 통해, 경험하지 못했던 시대에 대해 친밀감을 느낄 수 있다. 우리는 이미 소멸한 것에 감정이 동요되어, 상실감과 그리움을 느끼게 된다. 문화 비평가 그래프톤 태너는 이러한 현상을 ‘영원주의(Foreverism)’라는 용어로 설명한다. 영원주의는 단순히 과거를 보전하고 기억하는 것뿐만 아니라, 끝나지 않는 과거, 즉 영원히 지속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줌으로써, 우리가 느끼는 상실로부터의 우울을 소거하며, 계속되는 그리움의 감정을 느끼게 해준다.

그러나 그리움이란 무언가의 소멸, 상실로부터 발생하는 것이기 마련이다. 존재하던 무언가가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 상황으로부터 소중함을 느끼고 이를 상실하는 것으로 그리움을 느끼기 마련인데, 이미 소멸해서 영원히 존재하는 것에 대해 그리움을 느낄 수 있을까?

그렇다면, 이 전시는 어떠한 ‘그리움’에 대해서 말하고자 했을까?

≪포에버리즘(FOREVERISM): 우리를 세상의 끝으로(ENDLESS HORIZONS)≫에서 기억에 남았던 작품들을 간단히 살펴보면서, 이 전시가 말하고자 했던 영원한 그리움에 대해 생각해 보도록 하겠다.

박민하 Park Minha, A Story of Elusive Snow, 2013, B&W+color, stereo sound, 14 min.

<잡을 수 없는 눈 이야기>는 작가가 눈(snow)에 대해 가지는 향수를 불러일으킨다. 작가는 따뜻한 기후의 로스엔젤레스에 머물면서 눈을 그리워했다고 한다. 이 작품에서 그리움의 대상은 “그녀(her)”로 지칭되어 표현된다.  “그녀”는 인공눈(snow)이다.

작품에서는 할리우드의 이미지와 눈에 대한 이미지가 나온다. 눈을 만드는 작업, 도시에 눈을 펑펑 계속 뿌리는 모습 등, 영상 속 나오는 눈은 인공눈이다. 왜 할리우드와 눈이 함께 등장했을까? 인공눈은 할리우드 산업이 만들어내는 환영에 대한 은유로, 영화 산업이 가지는 허구성을 상징한다. 영화는 하나의 완성물로 완성되어 현실처럼 보이지만, 사실 현실과는 다른 성격을 띄고 있다. 눈이 내리는 일시적인 순간들이 영원해지면서, 우리는 잠시 동안 착각에 빠지고, 이 작품 속의 눈덩이들이 영원할 수 있는가에 대해 생각해 본다. 영화도 마찬가지이다. <잡을 수 없는 눈 이야기>에서는, 찰리 채플린과 히치콕의 영화 이미지가 중간중간 삽입되어 있다. 기억의 재구성과 영화의 허구성에 대해 말하는 듯하다. 할리우드는 현실과 맞닿아 있다. 그러나 영원히 잡을 수 없을 것처럼 멀리에 있기도 하다.

환상적인 영원주의를 말하는 듯한 할리우드는, 인공 눈과 비슷하다. 인공 눈은 진짜 눈이 아니다. 눈에는 눈이 하나도 들어 있지 않다. 그러나 우리는 그러한 눈을 보고, 경험했던 추억을 회상한다. 각자의 눈덩이들은 소중하게 자리 잡은 추억이지만, 영상 속 이미지는 환상에 가깝다. 집 앞마당을 가득 채울 만큼 가득 쌓이는 눈을 만들어 낼 수 있는 것, 눈이 내리지 않는 따뜻한 날씨에 눈을 만들어 내는 것은 환상이다. 그러나 그러한 환상 속에서 우리는 현실을 추억하고 회상한다. 인공눈이 녹지 않는다는 것은, 우리가 눈을 만졌던 실제 경험이 차갑고 축축하게 녹는 눈으로부터 우리의 그리움이 발생하는 것과 대비된다. 인공눈은 이를 경유해 주는 매개체로서 작동할 뿐 우리는 인공 눈에 대한 그리움을 가지고 있지 않은 것이기도 하다. 그러나 인공눈을 직접 만드는 과정에서 인공눈에 대한 소중한 마음이 생겨날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든다.

박민하 Park Minha, Time Paradox, 2023, Single channel video, 16min film +2K, color, stereo sound, 17min.

두 번째로, 박민하 작가의 <타임 패러독스>가 기억에 남는다. <타임 패러독스>는 공룡 꼬리뼈 화석의 시점을 따라서 진행된다. 흥미로웠던 점은 죽은 공룡 화석이 아닌, ‘공룡 꼬리뼈 화석’의 시점에서 전개된다는 것이었다.

이 꼬리뼈 화석은 나름의 주체성을 가지고 박물관에 있는 상황과, 선사시대의 화석으로 존재하던 시절까지, 다양한 시간을 넘나들며 우리에게 질문을 던진다. “시간이 없는 곳에서는 어떻게 기억이 작동하는가? 이때 이미지는 무엇을 통해 생산되는가?”

우리의 삶은 살아 있을 때만 지속된다. 죽음의 상태인 공룡 꼬리뼈 화석의 입장에서 바라본 세상의 모습과 변화는 죽음과 시간성에 대해서 재고하게끔 한다. 한 공룡이 죽어서 화석의 입장이 된 순간부터 그에게 시간은 무의미하다. 그러나 동시에 세상의 시간은 흘러간다.

“영원은 시간을 무력화한다.” 시간이 흘러간다.. 보존된 공룡 꼬리뼈 화석도 어느 순간 끝이 나는 존재일 것이다. 영원한 것은 시간을 무력화할 수는 있지만, 시간은 절대 무력화될 수 없다. 시간은 우리를 무력화한다. 영원해진 나는 주체성을 가지며, 세상의 변화를 인지할 수 있게 될까? 영원해진다면 모든 것은 빅데이터처럼 세분화되고 통계화될 수 있는 무언가가 되지 않을까?

<타임 패러독스>는 이처럼 시간이 가진 속성을 생각해 보게 해준다.

황민규 작가의 <정월>도 흥미로운 작품이었다. 이번 전시에서도 영상 작품들이 나를 이끌었다. 특히 <정월>은 재앙 이후의 가까운 미래의 모습을 보여주는 듯 하다. 이러한 재앙은 코로나를 겪었던 우리의 모습 같기도 했다. 재난 이미지 사이사이에는 모든 게 안온하고 순조롭게 반짝거리며 빛나는 물결이고, 물 위에서 튜브를 타고 넘실거리는 사람들이 보인다. 이렇게 평화로운 순간에 재난과 신기한 일들은 찾아온다. 갑자기 해안가에 정어리 떼가 대거 출몰하기도 하고, 3m짜리 대왕 오징어가 나타나기도 한다. 이러한 일들은 우리가 예상할 수 있는 범주 속에서 일어나는가? 그렇다면 우리가 예측할 수 있는 일이란 무엇일까? 신기한 일들은 왜 일어나는 것일까? 앞으로 일어날 재난에 대한 경고인 걸까? 생각보다 이 세상에서는 절대 일어나지 않을 것만 같은 일들도 일어나고, 엄청난 재난이 벌어져도 다시 살아갈 수 있고, 다시 일상이 찾아온다. 사람들과 함께하고 싶지 않아도 때로는 다시 사람들과 함께하고 싶은 마음이 찾아온다.

왜 그런 마음이 생겨났다가 사라지고, 그런 일들이 일어날까? 모든 것이 흘러간다.

결국 우리의 삶은 연속성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분절되어 있는 것이 아니다. 순간은 현재로 정의할 수는 있지만, 그런 찰나가 일종의 점 같은 단 한 순간이 될 수 있으면서도 될 수 없다는 것이다. 인간은 끊임없이 흘러가며 현재에 존재한다. 우리가 그리움을 느끼는 것은, 과거를 현재와 연결되어 있는 무언가로 인식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2전시실 로비에서 게임을 발견해서 너무 재미있게 했다.

멜트미러(isvn )Meltmirror(isvn), P.O.G. mute, 2024, Digital game, play time: 40min.

아 이 게임… 너무 재미있었다. 게임 제작자가 멜트미러! 음악은 김한주!라는 캡션을 보고 홀리듯이 게임을 실행했다. 게임 소개에 따르면, 대규모 회고전이 열리기 하루 전, 시작 최종 파일을 공유하지 못한 채 유령이 된 작가 ‘YOU’의 이야기라고 한다. 하나의 유령이 이야기를 들려주면서 조금씩.. 나아가는 게임이다. 그러나 모든 게임이 그렇듯, 그 게임을 깨려는 것이 목표인지, 다음 이야기를 듣고 싶은 것이 목표인지를 모르는 것처럼 그냥 깨고 싶었다!!

아쉽게도 전시가 오후 7시까지여서.. 결국 게임을 클리어하지 못하고 나왔습니다.. 게임을 좋아하시는 분들이라면 일찍 가서 전시를 관람하는 것을 추천드려요!!

이 게임은 RPG[1]형식인데, 특이한 점은 선택지가 많은 것에 비해 게임 참여자의 선택이 결말에 많은 영향을 끼치지는 않는다고 한다. 그러나 그러한 착각을 느끼게끔 게임은 진행된다. 게임에는 많은 선택지가 등장한다. 우리는 우리의 ‘선택’이 유의미하다고 생각하기 마련이다. 하지만 이러한 선택이 사실상 의미가 희박한 일종의 반복적인 행위로 전락할 수도 있는 것이다. 이점이 너무 흥미로웠고, 게임을 클리어하지 못했지만, 이 게임의 진실..을 알고 나니 약간 허무하기도 했다. 그렇지만 역시 결말은 여전히 궁금하다.

[1] RPG : 롤플레잉게임(Role Playing Game)의 약자이다.

≪포에버리즘(FOREVERISM): 우리를 세상의 끝으로(ENDLESS HORIZONS)≫ 전시를 보고 나서, ‘그리움’을 느끼는 것은, 어떠한 감정이 요동치게 되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누구에게나 현재와 연결된 과거가 있다. 무언가가 그리운 감정으로 우리에게 다가오는 것이다. 동시에 우리는 그 무언가가 우리에게 더 이상 찾아올 수 없다는 것을 상기하면서, 알 수 없는 복합적인 감정을 느낀다. 다시 찾아올 수 없는 것.

우리는, 우리 주변의 것들이 소멸한다는 것에 그리움을 느껴 왔다. 옛날 동네 문방구가 전부 GS25로 바뀌고, 매일 가던 카페의 낡은 의자의 반질반질해진 부분도… 전부 사라지게 된다. 사라진 것은 그 흔적조차 남기지 않고 우리의 감정을 움켜쥐고 마구 흔든다. 우리가 그것들을 다시 보고 싶은 이유는, 그것으로 인한 감정을 느꼈기 때문이 아닐까?

옛날 카페의 이상한 핸드드립 커피… 커피 냄새, 가끔 놀러 오는 강아지… 뭐 이런 것들이 없어진다는 것. 나는 자주 소멸할 것들에 대해 생각한다. 그러면 모든 것은 무의미해지기 마련이다. 사라질 걸 알지만 사라지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마음뿐이다. 요즘의 새로운 것들은 모두 오래갈 생각이 전혀 없고, 우리에게 슬픈 그리움조차 남겨주지 않고 사라질 준비를 하고 태어나는 것 같기도 하다. 10년 전 산 하늘색 선풍기가 올해 산 하얗고 남색 선풍기보다 강력하고 견고했지만, 지금은 없다.

그리움에 관해… 소멸한 것들에 대한 그리움에 대해 생각해 본다. 시대적 그리움은 그 시절의 아름답게 말려진 드라이플라워처럼, 형태와 색깔이 점차 희미해지더라도 아름다운 무언가로 기억된다.

스티브 비숍 Steve Bishop, Something to Remember You By, 2019, Melamine- covered chipboard, carpet, PVC flooring, LED lighting, PVC model cake, polyethylene storage containers, radio and playlist, dimension variable.

그러나 개인의 그리움들은, 직접적으로 본인에게 소멸한 것들을 향해 있다. 좀 더 내밀히 말하자면, 개개인의 소멸에는 어떠한 아픔이 존재한다. 무언가를 영영 다시는 절대 볼 수 없다는 것은 영원주의와 상반되는 것 같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영영 우리는 그것을 상상하고 기억하고 추억할 수 있다. 그것은 영원히 그대로 우리의 기억 속에 잔존, 해체 및 재구성된다. 소멸은 그리움을 낳고, 영원한 것에 대해 생각하게 하는 것이다. 영원하다는 것은 일종의 허상이지만, 이데아처럼 불멸하는 어떠한 것일 수도 있다. 그 순간의 영원. 우리가 기억하는 모든 것들이 영상 속에서는 영원한 아름다움이지만, 햇볕에 반짝이는 한강 물처럼 순식간에 지나가는 찰나들로 구성되어 있다.

우리는 이처럼 다양한 작품들을 통해 직접 경험해보지 못했던 과거를 그리워하게 된다. 이로 인해 소멸했던 과거의 문화가 다시 유행하면서, 그 문화가 재발생하기도 한다. 그러면서 그러한 것은 현재가 되고, 과거와 현재가 이어지며 현재의 문화가 소멸한 것은, 다시 순환되어 미래에 그러한 문화가 재발생할 수 있다는 가능성만을 남긴다. 이러한 가능성은 문화의 영원에 가까워지게 된다.

따라서 알지도 못했던 것을 그리워하고, 아름다운 것으로 기억되는 것이 우리에게 익숙하게 작용한다. 이는 그리움에 대한 슬픈 감정을 소멸시키는 것이기도 하다. 개인이 자신의 삶에서 느끼는 그리움은 소멸에 관한 것으로 슬픈 감정이 찾아오는 반면, 우리가 경험하지 못한 것에 대한, 일종의 매체를 통한 그리움의 생성은 소멸에 대해 큰 상실감을 느끼게 하지 못할 것이다. 애초에 그게 있었던 경험이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걸 경험한 이들의 기억과 증인처럼 구성된 예술작품들을 통해 우리는 환상적인 그리움, 옅게 쬐는 햇살 같은 그리움, 또는 갑자기 찾아오는 주저앉을 만큼 먹먹한 그리움을 느낄 수 있다. 자신의 경험에서 느낀 것들로 실제로 경험하지 않은 것들을 재구성하며 감정이 찾아오게 되는 것이다. 이는 과거의 것으로 현재의 의미를 재생산하는 것이며, 이러한 소멸과 생성, 재창조, 해석의 순환은 무시간성을 보여준다.

이 전시에서 작가들은, 흘러가는 시간 속에서 보고 싶은 것들과, 언젠가 지나갈 것들에 대해, 그리고 허상뿐인 영원 속 무언가와 우리가 직접 경험하지 않은 추억들을 그리움이라는 풍선을 불어서 하늘에 둥실 떠오르게 한다.

글 이미지: 이웃 선용님

제목

2024년 05월 18일

저도 isbn의 게임 작품 가장 재미있었던 것 같아요! 특히나 왼쪽에 위치한 게임 속에 등장하는 작품들과 작품의 캡션이 인상깊더라구요!

익명